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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근민 전 제주지사가 민주당에 복당했다고 한다.
그것도 우근민이 먼저 복당 신청을 한 것도 아니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먼저 우근민에게 손을 내민 것이라고 한다.
무려(?) 5년만에 우근민이 민주당으로 돌아온 셈인데 우근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복당하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근민의 화려한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우근민이 복당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우근민은 전 제주지사 출신으로 2002년 제주지사에 당선됐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2004년에 제주지사직을 상실하고 뒤이어 민주당에서도 쫓겨났던 인물이다.
그뿐 아니라 더 큰 문제는 그가 제주지사 시절 지사실에서 여성을 성희롱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에 성희롱 전력이면 우근민이란 인물의 도덕성은 거의 쓰레기 수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인물에게 먼저 손을 내민 민주당을 보고 있자면 지난 대선 실패 이후 민주당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새로운 민주당을 보여주겠다는 이야기도
결국 사람들을 속여 표를 얻기 위한 사탕발림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민주당이 우근민에게 손을 내민 이유는 우근민이 제주지사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우근민의 도덕성이 어떻든간에 아직도 우근민을 지지하는 제주도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고 (이것도 참 ~ 씁쓸한 일이긴 하다. -ㅅ-;;)
6월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에 당선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인물이긴 하다.
결국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면 선거법을 위반했든 성희롱을 저질렀든 민주당은 그런 인물이라도 OK라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에서도 우근민의 복당을 반대하는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결국 민주당 지도부는 우근민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우근민이 복당이 이제와서 취소될 가능성은 전혀 없어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민주당의 본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ㅅ-++
제주도까지 우근민을 찾아가 복당을 요청했던 사람이 바로 김민석 민주당 최고의원이라고 하던데
그런데 김민석이 누구였던가? 임수경 단란주점 사건의 주인공 중 한 명이 아니었던가? ㅇㅅㅇ??

임수경 단란주점 사건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5.18을 하루 앞둔 2000년 5월 17일에 민주당 의원들은 5.18 묘역을 참배한 뒤 광주의 "새천년 NHK 단란주점"에 모여 접대부를 불러 함께 술을 마셨다고 한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 자리에 통일의 꽃이라고 불리는 -.,-;; 임수경이 오게 되고 술에 취한 민주당 의원들 중 한 명이 임수경에게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 일로 꼭지가 돈 임수경이 인터넷을 통해 그 자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폭로해서 당시에 엄청나게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인데
참고로 임수경은 인터넷에 올린 자신의 글을 급히 내렸지만 이미 그 글을 본 사람들에 의해 여기저기 엄청나게 퍼지고 난 뒤였다.

5.18 하루 전날에 단란주점에서 접대부 불러 술파티 벌이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 중 한 명인 김민석이 성희롱 전과가 있는 우근민을 찾아가
민주당에 돌아와 달라고 삼고초려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성희롱 범죄자에게 얼마나 관대한가!! 하물며 접대부 불러 술 마시는 것 쯤은 민주당에선 아무것도 아닐 듯 하다. -ㅅ-;;;;


사실 민주당에게 크게 뭔가를 기대했던 것도 아니긴 하지만 어째 점점 더 맛이 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ㅅ-;;
사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경제 정책은 큰틀에서 보자면 도찐개찐 수준이다만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내세우는 건 마찬가지지 뭐...)
그래도 그들의 민주화에 대한 기여도는 나름 높게 평가했건만 민주당은 끝끝내 마초 정당에서 탈피하지를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헤라 ~


* P.S ① 임수경은 1988년에 북한을 방문해 화제를 일으켰던 인물로 흔히 "통일의 꽃"-.,-;; 이라고 불린다. 방북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4개월간 수감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일은 지금도 좀 마음이 아픈 일인데 2005년에 임수경의 아들이 필리핀에서 익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일을 보도한 기사에 악플러가 임수경의 방북 전력을 문제 삼아
아이의 사망을 조롱하는 악성 댓글을 달았고 임수경이 악플러들을 고소해 악플러들이 벌금형을 선고받았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일은 한국에서 악플러가 법에 의해 처벌받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 P.S ② 임수경이 직접 쓴 5.18 단란주점 사건에 대한 글의 전문을 아래에 남긴다. 관심있는 분은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1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다시 읽어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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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의 편지(386의원들의 단란주점추태)

문을 열자 송영길 선배가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계시더군요.
박노해 시인은 아가씨와 부르스를 추고 있었고
김민석 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두고 웃고 이야기 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마이크를 잡고있던 송영길 선배님은 저를 보고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듯이 손짓을 하셨고
얼핏보기에 정범구 박사를 포함하여 김성호, 장성민, 이종걸, 김태홍, 이상수 의원 등이 있더군요.

저는 아가씨들이 있건 말건 선배들에게 인사나 하고 가려고
다가서는 순간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하더군요.

야 이-년-아,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

믿고싶진 않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우상호씨였습니다.

술집 아가씨들은 놀라서 모두 저를 쳐다보았고,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우상호는 -미안합니다. 저는 이 사람에게 더이상 존칭을 붙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금 말했습니다.

이-놈의 기-집-애, 니가 뭔데 이 자리에 낄려고 그래? 미-친-년...

저는 일단 방을 나와 저와 함께 온 전야제팀이 앉아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참외를 하나 집어들었는데 우상호가 들어와 앉더군요.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 그 기-집-애, 이-상-한 년-이네. 아니 지가 뭔데 거길 들어와,
웃기는 기-집-애 같으니라고...

한두번도 아니고 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참외를 테이블에 던지며
저도 욕을 한마디 했지요.

이런 씨-*, 어따대고 이-년 저-년이야.
나두 나이가 30이 넘었고 애기엄만데 어디서 욕을 해...라고요.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시정 잡배들의 오고가는 대화도 아니고 참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계속 하겠습니다.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술이 꽤 취해있긴 하더군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의 불만은 이것이더군요.

서울에 온지 3주가 지났는데 제가 연락을 안 했다는 것, 5.18 전야제 사회를 본다는 소리를 듣고 임수경 이름
또 팔아먹는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발언중간 중간 이-놈의 기-집-애, 저-놈의 기-집-애,
이-년, 저-년 소리는 계속 되었구요.
그러더니 마무리를 하면서 자리에 있던 광주의 김태홍 당선자에게
선배님, 죄송합니다...하더라구요.

저는 그랬죠. 국회의원이라고 선배님이고 죄송하냐고...  나는 내가 존경하던 선배에게는 술집 아가씨들 앞에서
이-년 저-년 소리 듣고 끌려나와야 하고, 같이 고생하던 후배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이 국회의원한테만 미안하냐고...
우리같은 사람들은 아가씨들 나오는 술집에서 양주마실 팔자가 안되니 나가서 소주나 먹자고... 그리고 나왔습니다.

모두 일어서는 순간 우상호가 테이불에 있던 양주의 병을 새로 따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계산대로 갔습니다.
이미 정범구 박사가 계산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명세서를 조목조목 써달라고 했습니다.
양주 두병에 음료수, 안주가 서너가지로 22만 7천원이 나왔고, .양주 한병과 안주 한접시는 서비스였답니다.

저는 술집 아저씨한테 물었죠.

난 이집에 처음으로 오는데 이집은 처음 오는 사람한테도 서비스를 주느냐,
우리는 서비스 받을 일이 없으니 모두 계산서에 넣으라고 말이죠.

그 아저씨는 그냥 서비스로 드시라고 했고, 저는 계산을 하겠다고 부득불우겼습니다.
그 아저씨는 좀 황당했겠지요. 서비스 주고 욕먹고...

아무튼 계산은 하되 다는 못 내겠다,
양주 한병은 우상호가 땄으니 저 사람에게 꼭 받아라,

이미 계산한 돈은 정박사에게 꼭 돌려줘라 당부를 한 후
20만원을 저와 함께 전야제 사회를 본 송선태 선배님의 카드로 계산을 했습니다.

계산대에서 실랑이를 하며 저는 그랬습니다.
낮에는 검은 넥타이 매고 망월동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밤에는 아가씨끼고 술 먹고 잘들 한다 등등...
술마시고 노래부르며 떠들던 그 방에서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한 말을 다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무 반응이 없더군요.

가라오케 술집을 나서며 송선태 선배님에게 술값은 나중에라도 꼭 갚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지갑을 갖고있지 않았습니다.

송선배님은 물론 괜찮다고 하셨지만 저는 정말 갚을 생각입니다.
그때 우상호가따라오더군요.

수경아, 이-놈의 기-집-애야, 너 거기 안 설래??
아, 이 구제불능의 인간을 어쩌면 좋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우상호, 당신하고는 이제부터 끝이야,
우리서로 아는 척 하지 맙시다.
나 정말 당신하고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돌아섰습니다. 돌아서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제 친구들은 다 압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세사람을
대라면 그중에는 항상 우상호 형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단순히 술취한 우상호에게 욕먹은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글을 쓰고있지는 않습니다.

386, 사람들은 386이 어쩌구 하며 회의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저는 386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그 386의기반은 바로 5월의 광주입니다.

80년대의 학생운동은 그것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지속되었습니다.
광주를 떠나서는 386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저는 선배들이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5월의 광주에서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광주의 라디오방송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지도 않습니다.

그 커다란 가라오케에 그들이 유일한 취객이었다는 것이
말 해주듯이 광주 사람들은 5.18이 되면 먹고 노는 일을 자제합니다.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망월동 참배를 위해 광주에 내려왔다는 사람들이, 386을 내세워 국회의원 선거전에 나와 그것을 기반으로 당선되었다는 사람들이,

낮에는 망월동에서 광주의 영령을 추모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광주의 정신을 밟아버렸습니다.

만약 5.18 유족이 이 사실을 안다면, 386의 순수성과 역사성으로 그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그들과 거리에서 어깨를 겨누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동지들이, 5월 17일 하루종일 아들의 무덤 곁에서 참배객을
맞고 계시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감히 주문합니다. 386의 이름을 더이상 들먹이지 말던가,
망월동 참배가 아닌 놀러왔다고 하던가,
한때나마 그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음을 자랑스러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더이상 믿음도 희망도 걸 곳이 없음에 앞이 캄캄합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386 당선자가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는 기사가 신문마다에 났더군요.

술에 취했던 그들은 다음날인 5.18 아침에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에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밤새 광주 영령을 진심으로 추모했다는 듯이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요.

제가 밥도 굶어가며 다섯시간씩 서서 전야제 사회를 보던 그 시간에 내가 존경하던 선배들은 아가씨와 술마시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면서, 오히려 나보고 5.18에 이름을 팔아먹었다고 말한 사실 역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날 아침 10시경, 제 휴대폰 벨이 울리더군요.
저는 그들 중의 한명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상호와의 선거전에서 승리한 이성헌 선배였습니다.

망월동에서 만났는데 반가왔다는,
서울에 올라오면 꼭 한번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이성헌 선배는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두차례 만난 것이 전부인데도 우리나라로 귀국하실때,
또 귀국을 해서도 저에게 미국까지 수시로 전화를 하던 분입니다.
전화를끊으며 생각했습니다. 왜 이성헌이 당선되고 우상호는 선거에서 떨어졌는가를...

그후 며칠 동안 저는 그들로부터 단 한통의 전화도, 제3자를 통한 메시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느닷없이 그 자리에 잇었던 김성호 당선자가 전화가 와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하더군요.
통화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그날의 사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상호와 아는척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이죠.

그런데 다음 날인 오늘, 우상호가 전화를 했더군요.
아마 김성호씨가 무슨 말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여보세요, 임수경씨 부탁합니다.

전데요.

수경아, 나 상호야.

누구시죠?

나야, 우상호.

저는 우상호라는 사람을 모르는데요...

수경아, 미안하다.

실례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새천년 nhk 는 가라오케를
나설 때 처럼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한낮 버스정류장에서 땡볕을 받으며 버스를 기다리다가 받은 전화 한 통,
그것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저를 심란하게 만듭니다.

제 어머니는 우상호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고,
저와 친한 선배언니는 아주 잘했다고말했습니다.

저는 잘 한걸까요, 잘못한걸까요...

긴 글을 마칩니다.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셈이 되어버리긴 했는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임수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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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③  박노해 시인이 시를 잘 쓰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고 사진을 꽤 잘 찍는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게 됐는데 부르스도 잘 추는가 보다. -.,-;;
손무덤의 그 손이 어디를 갔나 했더니 접대부 허리를 붙잡고 부르스 추고 있었구나.
우상호는 현 민주당 대변인 , 송영길은 100분 토론 민주당측 단골 패널. -ㅅ-;; 유명 인사 많구만... ;;;

임수경은 "그래요. 저는 선배들이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나도 죄 많은 놈이고 털으면 먼지 엄청나게 나올 놈이지만 당연스레 남자들이 여자를 옆구리에 끼고서 술 먹는 걸 참 역겹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그건 전혀 당연스런 일도 아니고 그러려니 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홍등가에 가서 돈 몇 만원 , 몇 십만원 주고서 성욕 푸는 남자들이 내 주변에도 많은데... (솔직히 말해서 내 친구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있지. -ㅅ-;;)
솔직히 말해 난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본 적도 없고...
(여자들의 환상을(?) 깨서 참 미안한데 솔직히 말해 성인 남성 중 7~80% 이상은 홍등가 경험이 있을 걸. 내 주변인들만 봐도 그렇고...ㅋㅋㅋ
가끔씩 홍등가에 절대 안 가는 남자들도 있는데 그런 남자들일수록 오히려 여자에게 더 인기가 없더라. ㅋㅋㅋ 인생은 참 아이러니해. ㅋㅋㅋ)
 
가끔씩 난 내가 나이를 더 많이 먹은 후에 룸싸롱에 가서 여자를 끼고 술 마시면서 그것을 비지니스라며 정당화하게 될까봐 진심으로 겁이 나곤 한다.
나도 별로 깨끗한 놈은 못 되지만 적어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지. 찌질해도 한심해도 별볼일 없어도 적어도 인간답게 살아야지. 그게 내 꿈이고 목표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조차 괴물이 되어버릴까봐 두렵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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